몰입과 거의 비슷한 상태인 삼매를 추구하는 화두선에서는 채식을 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육식이 몰입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몰입은 생각과 집중의 강도가 매우 높은 상태를 만드는 것이고 매우 활발한 두뇌 활동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활동은 단백질 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하다가 기억하고 싶은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과 관련되어 도움이 될 만한 사실이 떠오르면 즉시 노트에 기록한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유치하더라도 가능하면 적어둔다. 그러면 생각이 유도되고 집중에도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노트에 기록해두면 그 아이디어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지고 머리를 비울 수 있어서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효과도 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30분 정도 땀 흘리는 운동을 한 뒤, 집에 와서 샤워와 식사를 마치고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생각을 이어간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생각을 하다 잠이 들어야 한다.
고난도의 문제를 푸는 경우는 명상하듯이 생각의 속도를 충분히 줄여줘야 한다. 이때는 알파파가 나타난다. 눈을 감으면 시각 정보의 입력이 차단되고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뇌파가 느려져 알파파 상태가 된다.
느린 알파파에서 뇌파가 더 느려지면 세타파가 나타나는데, 꾸벅꾸벅 졸거나 잠이 들기 직전의 상태다. 이른바 선잠이 든 것인데, 이때 아이디어가 가장 잘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사실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과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시도를 해봤다. 몰입을 시도하기 전에는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강도 높게 생각을 한 후 잊고 있으면 우연한 기회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하곤 했다. 특히 이완한 상태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듯이 보내는 경험도 많이 해봤다. 물론 이 상태는 기분도 좋고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 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완된 상태에서 쉬는 듯이 느긋하게 생각하되 1초 원칙을 실천하는 몰입적 사고만큼 해결책이나 아이디어를 얻는데 더 강력한 방법은 없었다. (1초원칙이 몰입 방법론으로 최고)
잠에서 깨어나 몇 초가 경과한 뒤에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직 몰입도 100%가 아니라는 얘기다. 100% 몰입 상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날 때, 혹은 잠에서 깨어 의식이 돌아올 때 이미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몰입을 했다고 하면 한달 내내 이런 현상을 경험한다. 이런 이유로 몰입 상태에서는 꿈을 꾸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경우만 봐도 몰입 중에 꿈을 꾸다 깨어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한 꿈을 꾸는 것도 몰입이 50%~60% 정도 이루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몰입 상태에서 잠이 깰 때의 또 다른 특징은 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의식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적어두려고 일어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 일어날 때도 전혀 힘이 들거나 졸리지 않다. 오히려 몸이 가볍다.
몰입 중인 연구원의 전형적인 하루 중 일부 발췌
사무실에 가서는 온몸에 힘을 빼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계속 생각에 골몰한다. 이때 가끔 앉은 채 선잠이 들기도 한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만 있는 것이 지루하면 가끔 사무실에서 왔다갔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노트에 기록한다.
테니스 치는 동안은 문제를 잊고 오로지 테니스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이때가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문제를 잊는 시간이다. 가끔은 테니스를 치기 직전에 중요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테니스를 치는 동안에도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테니스에 몰두할 수 없게 되고 컨디션을 관리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따라서 운동은 문제를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스스로 몰두할 수 있는 종목을 선택해야 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가족과 함께 보낸다. 이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집중도가 떨어지는데, 원만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때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노트에 적어야 한다.
대략 8~9시가 되면 졸음이 온다. 이때 침대로 자리를 옮겨 편안하게 눕는다. 낮에 생각하던 문제를 아주 천천히 생각하며 누워 있노라면 으레 잠이 든다. 그러다가 12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문제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혼자만의 새벽 시간에 계속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잠을 자려고 누워 있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일어나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누워 있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생각을 하는 시간은 불규칙한데, 짧으면 30분 정도, 길 때는 2시간 정도 된다. 다시 잠이 들고 아침 6시경에 주어진 문제를 생각하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천재의 뇌로 바뀌는 '50시간 몰입의 법칙'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1초도 쉬지 않고 생가하기를 지속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몰입도가 올라가는 경험을 7년 동안 반복해서 경험했다.
몰입도 100%에 도달하는 시간은 대략 3일이 걸린다. 잠을 자는 7시간 외에 눈떠 있는 시간은 오로지 주어진 문제만 생각한다면 하루에 17시간 생각을 할 수 있다. 3일 동안 51시간이 된ㄷ. 따라서 50시간 연속으로 생각하면 몰입도 100%가 되는 것이다.
미지의 문제를 50시간 연속으로 생각하면 몰입도 100%가 되어 두뇌 가동율이 최대가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을 기준으로 그 문제에 관한 한 영재의 뇌가 된다. 몰입도 100%인 상태를 몇 개월 이상 계속 유지하면 그 사람을 기준으로 그 문제에 관한 한 천재의 뇌가 된다.
중국 경전 음부경
고자선청 농자선시
눈이 먼 자는 듣는 능력이 뛰어나고 귀가 먼 자는 보는 능력이 뛰어나니
절리일원 용사시배
다른 것을 차단하고 하나에 집중하면 능력이 열 배가 되고
삼반주야 용사만배
3일 동안 하나에 집중하면 능력이 만 배가 된다.
K가 회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은 내가 재료 분야의 난제를 해결할 때 몰입한 방식과는 다르다. K는 직장인이기에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한 것이다. 출퇴근 시 이동할 때나 퇴근 후 혹은 잠자리에 들 때 몰입했다.
강한 몰입을 위해서는 연속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내가 강한 몰입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휴가나 명절 연휴 등을 활용하는 것을 권하는 이유다.
강한 몰입을 하는 중에도 규칙적으로 매일 30~40분 정도 운동을 해줘야 한다. 이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몰입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루틴이다.
강한 몰입 상태에서는 몰입도가 잠시 떨어져도 금방 되돌아온다. 50시간을 생각하여 몰입도가 높이 올라간 상태에서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이런 상태는 몰입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한 몇 주, 몇 달이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일전에 교수님이 강한몰입을 하는 와중에 헝클러진 머리와 모습으로 몰입클럽을 참여하신 적이 있는데, 몰입은 저정도로 해야 하는 구나하는 좋은 참고가 된다. 점점 다듬어 나가, 앞으로 나 또한 50시간을 넘게 내내 생각하는 강한몰입을 경험하게 될 수 있을 때 이런 교수님 모습을 떠오르면 좋은 기준점이 될 것 같다.)
강한 몰입의 위력을 경험한 K는 이후에도 명절이나 긴 연휴가 있을 때마다 내게 연락을 해서 몰입 공간 대여를 요청하고 강한 몰입에 들어가곤 했다.
내가 처음 몰입을 경험한 것은 1990년 2월이었다. 미국 니스트에서 보낸 1년간의 포스트닥 생활을 2개월 정도 남겨놓은 때였다. 당시 나는 가족을 한국에 남겨두고 혼자 지냈기 때문에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최선의 연구 활동이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나는 '해결 되지 않은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의식이 있는 한 풀릴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실험을 하다가 실험 결과가 잘 해석되지 않을 때는 의식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동원하여 그 실험 결과의 의미만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든 내가 온통 그 문제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야말로 다른 생각이 전혀 없이 오로지 그 실험 결과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태는 일상의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의식의 흐름이 한 가지 문제만을 가지고 연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생각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상당히 높은 빈도로 얻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상태가 스트레스보다는 오히려 약간의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하니 몰입적 사고를 몇 년을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고, 오히려 몸이 건강해지고 의욕이 넘쳤다. 운동은 몰입 상태에 들어가거나 몰입 상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몰입 상태를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규칙적인 운동을 계속했다. 장기간의 몰입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결론 중 하나는 몰입적인 사고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규칙적인 운동이라는 점이다.